장춘식 목사의 선교 이야기 - page 1

한국 최초의 미연합감리교회 선교사 아펜젤러(1)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는 16 세기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운동에 참가했으며 그 후
18 세기 미주로 이민해서 필라델피아 지역에
정착했던 청교도들의 후손이다. 아펜젤러의
아버지는 독일계 스위스 사람으로 독실한 개혁
장로교회 신자였고, 어머니는 메노나이트
출신이었다. 아펜젤러는 펜실베이니아 주 수더톤
베들레헴 턴파이크 인근 농가에서 1858 년 2 월
6 일에 세 형제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고, 1884 년
12 월 17 일에 엘라 닷지와 결혼했다. 엘라는
17 세기에 영국의 체스터에서 기선을 타고
매사추세츠 살렘 지역에 정착했던 청교도 윌리엄
닷지의 후손이다.
아펜젤러는 1885 년 4 월 5 일 부활주일부터 1902 년 6 월 11 일
순직하기까지 미연합감리교회 해외선교사로 부임해서 배재학당과 정동 제일
감리교회 창립 등 학원선교와 우리 말 성경번역에 주력했다.
아펜젤러 부부의 청교도적 기독교 신앙은 그 자녀들의 선교와
봉사활동을 통해서도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펜젤러는 슬하에 네
자녀들을 두었는데 그 중 셋은 모두 한국 선교사로 봉사했다. 장녀
엘리스(Alice Rebecca, 1885-1950)는 이화학당에서 교사, 학당장,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총장으로 수고했으며, 장남 헨리(Henry Dodge, 1889-
1953)는 배재학당 제 5 대 교장으로 취임해서 1940 년에 일제에 의하여
추방될 때까지 20 년간 배재를 위하여 헌신했고, 막내 메리(Mary Ella)는
한국 선교사 레이시(John V. Lacy)와 결혼하고 이화에서 교수로 봉직했다.
아펜젤러는 실천적으로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웨슬리의 체험적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 아펜젤러의 생애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는 웨슬리처럼 그가
체험했던 회심(回心) 사건이다. 아펜젤러는 학창시절 웨스트 체스터
사범학교와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새 사람이 되었음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 때가 1876 년
10 월 1 일이었다. 그는 원래 장로교 출신이었지만 그 후 뜨거운 영적 신앙을
갈망하며 교회를 1879 년 4 월에 랑카스터 제일 감리교회로 옮기고 전도
사업에 열중했다. 그가 해외 선교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1881 년 2 월 26 일자 그의 일기에는
“나에게 야망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봉사하는데 완전히 헌신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펜젤러는 그 후 전도자의 꿈을 갖고 1882 년
가을에 뉴저지 주 드류(Drew)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아펜젤러가 드류에 입학하던 그 해 5 월 22 일 인천
화도진(花島鎭)에서는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당시 조선은 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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