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야만 했던 그는 그만 언더우드 박사 부부
그리고 게일과 함께 타고 가기로 했던 기선을 놓치고 11 일이 되어서야 그
다음 배를 타고 목포로 향해가다 군산 앞 바다에서 해상사고로 순직하였던
것이다.
아펜젤러는 순직 당시에 두 명의 한국인과 동행하고 있었는데 한 명은
배재학당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며 동시에 아펜젤러와 한 팀을 이루어
성서를 번역하던 조한규 선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서울 정신 여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을 맞이해서 집으로 돌아가던 학생이었다. 아펜젤러는 그가
타고 가던 쿠마가와마루 호가 다른 기선에게 들이 받혀 침몰하게 되었을 때,
그 배의 일등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동행하던 두 한국인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아낌없이 자신의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그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라는 말씀대로 우리 민족을 사랑했던 우리의
친구요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