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스
세계 선교역사에 있어서 우리가 자랑하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은 선교사들이
우리 땅에 복음을 들고 들어오기 그 이전에 이미
우리 말 성경과 우리 힘으로 건축한 교회당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바로 우리의
이러한 자부심과 자립 선교를 가능케 해준
한국선교의 은인이요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로스는 글라스고
대학과 에든버러 장로회 연합신학대학 (United
Presbyterian Divinity Hall, 1865-69)을
졸업했으며,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의 중국
동북지역 선교사로 1872 년부터 1910 년까지 활동하며 로스 역 한글성경을
출판했다.
로스에게 있어서 토착민과의 협력은 선교의 성공요인 가운데 무엇보다
주요한 요소였다. 로스의 우리 말 성경번역은 1876 년에 그의 처남이며 선교
동역자였던 맥킨타이어(1837-1905)에게 세례 받은 이응찬과 그 자신에게
세례받은 이성하, 김진기, 백홍준 그리고 1879 년에 세례받은 서상륜 등
한국인들과 선교사들이 서로 협동한 결과였다. 존 로스의 한글성경 번역은
1882 년 3 월에 누가복음을 시작으로 5 월에는 요한복음 그리고 1883 년에는
누가복음 개정판, 사도행전 합본, 그리고 요한복음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어서 1884 년에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그리고 1885 년에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를 출판하고 마지막으로 1887 년에
<예수성교젼셔>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출판했던 낱권 성경들을 모아 신약
전체를 발행했다. <예수성교젼셔>는 그러므로 로스와 맥킨타이어 그리고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서상륜, 김청송 등 한국인 번역자들의 선교협력과
노력으로 출판하게 된 최초의 한글성경으로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로스와 맥킨타이어는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인이 된 한국인들 스스로
한국인 개종자들을 위한 모임과 훈련을 자치적으로 이끌어 나가도록
지도했다. 즉 한국 선교를 위한 토착민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켜 한국교회
선교의 초석을 놓았던 것이다. 로스와 함께 성경 번역과 반포에 참여했던
식자공 김청송은 서간도에 돌아가 전도하며 한인촌에 교회를 설립했고,
이성하와 백홍준은 고향 의주로 돌아와서 매서인으로 활동하며 의주교회의
기초를 놓았는데 백홍준은 서양인과 교통하였다고 해서 체포되어 1892 년에
순교했다. 서상륜 역시 1883 년에 전도인으로 서울에 파견되어 로스역 성경을
반포하는데 힘쓰며 소래교회와 새문안 교회설립의 기틀을 놓았다.
로스는 생애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해서 1887 년 9 월 27 일 언더우드
선교사가 주관하는 세례예식과 장로 임명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