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식 목사의 선교 이야기 - page 14

한국감리교회 개척선교사 존스와 벵겔
조지 헤버 존스 (George Heber Jones, 조원시, 1867. 8.
14-1919. 5. 11)는 뉴욕 주 모호크 출신으로 뉴욕
유티카(Utica) 공립학교를 졸업했고 1883-86년
전화회사에 근무했으며 1886년부터 로체스터 YMCA에서
봉사하다 1887년 선교사로 임명받고 다음 해 1월
미연합감리교회 선교본부의 한국 선교사 파송을 받고
1888년 5월 14일 내한했다.
존스는 교육 선교사로서 처음 5년 동안 배재학당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경건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아펜젤러가
1892-93년 안식년을 맞이해서 귀국했을 때는 학당장
서리를 역임했다. 존스는 1890년과 1891년 일본에서
개최된 한국선교회에서 집사와 장로 목사 안수를 받았고
1892년에는 통신과정으로 테네시 주 헤리먼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중요한 것은 존스는 배재에서 활동하던 이 시기에 그의 어학선생이었던
최병헌을 통해 한글과 한문을 배웠고 한국 역사 문화 종교 등에 대한 지식을 쌓으며
향후 교육과 문서선교 활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존스는 그 후 1892년부터 1903년까지 인천 제물포교회(내리교회) 2대 담임 목사로
그리고 1895-1903년 이 지역 감리사로 시무했는데 이 시기는 존스의 생애에 있어서
그를 인천 강화 남양 황해도 지역 감리교회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게 한 선교의
황금시기였다. 존스는 1892년도에는 서울에 거주하며 제물포를 왕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음 해에 아펜젤러가 귀국함에 따라서 제물포에 상주하며 그 이전에
이미 이 지역 선교에 헌신하고 있던 벵겔(Margaretha J. Bengel, 1869. 8. 1-1962. 3.
7) 선교사와 더불어 전도와 교육 그리고 문서출판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벵겔은
미여선교회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지부 독일지회의 파송을 받고 1890년에 내한해서
이화학당에서 음악을 가르치며 제물포 지역 전도에 투입된 선교사였다. 1892년 4월에
존스와 벵겔은 초등학생 교육을 위해 교회 안에 남녀 매일학교를 개설했고 벵겔이
맡았던 여학교는 발전해서 훗날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인 영화학교가 되었다. 두
사람은 1893년 5월 10일 서울 정동에서 W. B. 스크랜톤 목사의 주례로 결혼하고
제물포에 정착한 후 특별히 한국여성과 전도인 양성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사경회와 신학반을 개설했으며 그들을 통해 제물포 외에도 강화도와 황해도 지역에
44개 교회들을 개척하고 설립하도록 지원했다.
1903년 안식년을 맞아 귀국한 존스는 1905년 아이오와 주 모닝사이드
대학(Morningside College)에서 선교학 강의를 담당하기도 했고 보스턴 신학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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